비인간 사육사

비인간 사육사

정다온 · 연재중 · 490.4k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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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세계에 이변이 일어나고, 육지의 90%가 바다에 잠겼다.

심해에서 신비로운 존재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고귀하고 오만했으며, 아름다운 만큼 위험했다.

하서윤은 본래 그들의 사육사였지만, 순진무구한 얼굴 뒤에 정교하게 짜인 함정에 빠지고 만다.

가녀린 갯민숭달팽이 소년은 그녀의 손을 꼭 쥔 채, 눈물을 글썽이며 속삭였다.
"서윤, 가지 마..."

조각상처럼 아름다운 문어 청년은 그녀를 품에 안고 다른 이의 접근을 막아섰다.
"제가 더 가치 있는 존재가 될게요. 제발... 저를 버리지 마세요."

하지만 가장 위험한 것은, 물가에 좌초된 저 아름다운 인어였다.
그는 운명의 수레바퀴를 제멋대로 굴리며,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로 그녀를 지키려 했다.

냉혈한 존재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그녀의 동족으로 위장해 접근하고, 곁을 맴돌다, 마침내 사로잡는다.

챕터 1

하서윤은 권한 카드를 업그레이드하고 중앙 제어 데스크에서 나왔다. 감염 구역을 거쳐 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동선이었다.

유리벽 너머에는 고통스러워하는 인간형 생물체들이 있었다. 그들은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이 여성에게서 희망을 보고 그녀에게 구조를 요청했지만, 하서윤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연구소 안에는 합성 실패로 태어난 산물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고통스럽게 흐느끼고 구슬피 울었다. 얼굴의 절반은 사람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흉측하고 기괴한 정체불명의 생물이었다.

그들 중 다수는 한때 이 실험 기지의 연구원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실험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이다.

오후에 실험 기지로 새로운 죄수들이 이송되어 왔다.

울부짖음과 절규가 A구역 전체에 울려 퍼졌다.

바다토끼 소년은 하서윤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겁이 많은 그는 이 소란에 놀라 온몸을 벌벌 떨며 가녀린 몸을 그녀에게 바싹 기대어 옷자락 뒤로 숨었다.

“괜찮아.” 그녀는 바다토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달랬다. “괜찮아, 무서워하지 마.”

눈가가 붉어진 아름다운 소년은 겁에 질린 눈으로 그녀의 손바닥에 몸을 기댔다. 핏빛 어린 얇은 입술이 몇 번 달싹였지만, 온전한 문장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서윤…….”

가늘고 부드럽게 떨리는 목소리였다. 그는 그녀의 손 옆에 머리를 대고 순하게 몸을 비볐다. “만져 줘……. 가지, 마.”

나른하고 애틋한 애원이 마치 어리광을 부리는 듯했다.

순간 마음이 약해진 하서윤은 자리에 앉아 겁에 질린 그를 달래줄 수밖에 없었다.

그 소리들은 개조 초기의 죄수들이 내지르는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이었다. 육체가 갈가리 찢어지는 고통은 그 어떤 형벌보다도 극심해서, 차라리 이대로 죽고 싶게 만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고통은 시작에 불과했다. 앞으로 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문들을 하나하나 겪게 될 것이었다. 이는 사형수들이 생의 마지막에 과학을 위해 공헌하게 하는 새로운 형벌 방식이었다.

바다토끼는 몸의 절반을 수조 밖으로 내밀고, 가늘고 긴 팔로 그녀의 다리를 애틋하게 감쌌다. 희고 보드라운 뺨을 그녀의 무릎에 순하게 기댄 탓에 하얀 연구복이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그녀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소년의 새빨간 눈동자에는 옅은 만족감과 행복감이 피어올랐다.

이 얼마나 큰 허락인가.

이분은 자신만의, 주인님이었다.

“11호, 많이 무서워?” 하서윤이 나지막이 물었다.

“무서워…….” 바다토끼 소년은 그녀의 부드러운 손길 아래 촘촘한 속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뺨의 피부에 자잘한 분홍빛이 번졌다.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말들은 끈적이듯 불분명했고, 숨길 수 없는 수줍음이 묻어났다.

옆 칸의 강화 유리 너머로, 음울하고 잘생긴 문어 청년이 침침한 눈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그는 바다토끼와 달랐다. 위험한 공격성을 지녔기에 수조 밖으로 나오는 것이 허락된 적이 없었고, 그 때문에 자신의 사육자와 그토록 가까이 있어 본 적도 없었다.

그는 17호로 명명되었다. 반인반문어의 두족류 연체생물과 유사한 구조를 가진, 하서윤이 담당하는 또 다른 실험체였다.

만약 이때 그녀가 뒤를 돌아봤다면, 자신의 앞에서는 늘 조용하고 순했던 청년의 눈 속에 자리한 짙고 무시무시한 폭풍을 보았을 것이다.

박사는 늘 하서윤에게는 사람을 끄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실험체가 연구원에게 감정을 품는 일은 드물었다. 그토록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실험을 겪으면서는 더더욱. 특히 이 구역에서 사육하는 실험체들은 모두 바다의 냉혈동물들이었다.

그들은 홀로 살고, 외롭고, 감정이 없었다. 그리고 고도의 위험성을 지녔다.

하지만 하서윤이 담당하는 실험체들은 모두 그녀에게 엄청난 애착과 신뢰를 보여주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예를 들면 몸의 모든 조직과 혈액이 치유의 명약이 될 수 있는 이 바다토끼 소년이라든가, 혹은 저 음침해 보이지만 창백한 조각상처럼 수려한 촉수 청년 같은.

거대한 반투명 해파리, 4호 푸른병정 변이체도 있었다.

실험체에게 이름을 붙이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그것이 규정이었다.

이름이 생기면 필연적으로 감정이 싹트게 마련이고, 불필요한 감정은 실험 기지 직원들에게 가장 의미 없는 족쇄일 뿐이었다.

하서윤은 예전에 자신이 처음 맡았던 실험체에게 몰래 이름을 붙여준 적이 있었다. 그 결과, 그녀는 그 실험체가 1차 분열 실험에 실패한 후 며칠 동안이나 울어야 했다.

그 이후로 그녀는 그들을 오직 번호로만 불렀다.

“내일 봐.”

업무를 마친 하서윤은 연구복을 갈아입었다. 또다시 하루 중 가장 힘든 시간이 시작되었다.

바다토끼는 흐느끼며,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한 붉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갈 거야……? 안, 자……? 여기서……?”

어눌한 문장들이 그의 입에서 끊어질 듯 흘러나왔다. 가느다란 팔을 수조 밖으로 뻗어 그녀의 옷자락을 잡으려 했지만,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17호 역시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유리판 위로 손을 짚었다. 조용하지만 깊은 그리움이 담긴 몸짓이었다.

이토록 생이별과도 같은 작별 인사는 거의 매일같이 반복되었다. 마치 유치원에서 부모와 헤어지기 싫다고 울부짖는 아이들 같았다.

그들은 이 연구소의 가장 혹독한 작업반장이라도 되는 듯, 하서윤이 24시간 내내 자리를 지키다 하루빨리 과로사하기라도 바라는 것 같았다.

하서윤은 그들의 감성적인 작별 인사에 진작 면역이 생겨서,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문을 나서자 해저 터널이 나타났다.

수중 사육 구역의 천장에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반투명 생물이 떠다니고 있었다.

하늘을 가릴 만큼 거대한 해파리였다.

젤리처럼 부드럽고 매끄러운 촉수가 우아하게 수축과 확장을 반복하며 하서윤이 가는 방향으로 떠내려왔다. 그리고는 유리를 사이에 두고 그녀의 윤곽을 부드럽게 덧그렸다.

사람들은 늘 아름다운 생물에 현혹되곤 한다. 투명하고 무해해 보이지만, 사실 그 체내의 독소는 사람을 순식간에 즉사시킬 수 있었다.

이것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독성이 강하고 무서운 해파리였다.

“나 갈게.” 그녀는 해파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잘 자, 4호.”

아름다운 촉수가 유리판을 스쳤다. 마치 그녀의 말에 화답하는 듯했다.

.

온몸의 피로를 벗어던진 하서윤은 아파트의 통유리창 앞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넘실거리는 수면이 호시탐탐 육지의 가장자리를 집어삼키고 있었고, 하늘은 찢어지기라도 한 듯 폭우를 쏟아내고 있었다.

실험 기지의 호텔식 아파트는 278층이었다. 백 년 전이라면 경이로운 숫자였겠지만, 그녀가 사는 162층은 한때 세계 최고층 빌딩의 높이였으나 지금은 그저 평균에 불과했다.

육지 면적은 10퍼센트밖에 남지 않았다. 더 이상 대륙은 나뉘지 않았고, 모든 인종과 모든 언어 체계의 사람들이 함께 생존했다. 육지는 인류 최후의 「바벨탑」이었다.

바벨탑. 성경에서 홍수로 대지가 멸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인류가 연합하여 천국으로 향하는 길을 낸 높은 탑.

이 행성은 수십 년 전 이변을 겪었다.

바다가 뒤덮는 면적은 계속해서 넓어졌고, 인류의 영토는 점점 줄어들었다.

세계의 90퍼센트 이상이 바다로 변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폭우는 마치 물질 보존 법칙을 따르지 않는 듯했다. 빙하가 녹고 설원이 사라졌으며, 그 뒤를 이어 바이러스와 변이, 그리고 각양각색의 기이한 진화가 찾아왔다.

그리고, 허공에서 나타난 듯한 미지의 끔찍한 이종 생물들도.

「바벨탑」 생물 실험 기지는 그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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